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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범과 방관자들
안성신문   |   2015-11-24

 

 

대부분의 조직은 경직된 상하관계로 움직인다. 보수적인 공직사회는 상하관계를 타 조직보다 더욱 중시한다. 시키면 해야 된다는 관념은 공직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이러한 공직사회의 관념은 언론을 힘들게 한다. 어떠한 문제점을 취재하면서 부딪치는 유혹은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다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인데’라는 생각, 즉 연민이 바로 그 유혹이다. 연민은 사실을 사실대로, 역사를 역사대로 알려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원칙과 상충되면서 기자를 혼돈에 빠트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실무 공직자들의 대부분은 방관자다. 주범은 따로 있다. 하지만 주범은 권력 아래서 대부분 무죄가 된다. 다치는 건 다수의 공직자들이다. 언론은 주범에게 다가가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그러나 주범은 방관자들의 침묵과 더 큰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이들에게 주범의 탈을 씌우고 뒤로 숨어버린다.

 

안성시는 올해 여러 법 규정을 어기고 사무를 처리했다. 언론에 드러난 것은 새 발의 피일 것이다. 지방보조금 심의규정을 어긴 것도 한 예이다. 공직자들이 규정을 어기면서 세운 예산은 대부분 정치인 표심 다지기 사업비이다. 누구나 안다. 주범이 누구인지. 그러나 공직자가 침묵하는 한 이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실무 공직자만 나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으면 끝나는 일이다.

 

이번에 안성시는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예산안 제출시한을 넘겨 2016년 본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법을 위반한 것으로, 집행부가 법정 제출시한을 넘긴 것은 전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공직자가 무능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제출시한을 못 지켰다는 것은 오히려 예산편성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압력이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이 압력의 주범은 정치인과 그 뒤에 있는 단체들일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는 또 침묵한다. 법 위반에 대한 제재가 가해진다면 그것은 실무 공직자, 즉 방관자의 몫이다.

 

얼마 전 현직 정치인이 공공시설과 공무원을 이용, 자신의 팬 미팅을 여는 일이 발생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거물 정치인과 함께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와도 관계가 있어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팬 미팅을 연 정치인은 아무런 피해가 없다. 주범은 또 달아나고 방관자들만 다치게 되는 것이다. 방관자들에 대한 연민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시대는 공직자에 대한, 엄격하지만 편향된 중립(?)을 요구한다. 현직 장관은 총선필승 건배사를 해도 되지만, 내부 고발자들의 소신발언은 반역으로 규정된다. 내부 고발자들은 처단해야 될 대상자로 낙인찍혀 결국 조직에서 내몰리게 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직 권력자만이 할 수 있고, 설령 권력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했어도 공직자들은 반대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사도(邪道)를 걸어도 그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주범은 따로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방관자들이 변하지 않는 한 주범은 또 자신과 남의 권력 뒤에 숨을 것이다.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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