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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 앉거나, 입을 닫거나
기획특집 교육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④
김수유   |   2015-10-27

 

 

시스템은 봉고차 같은 것이다. 아무도 조수석에 앉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 조수석에 앉기를 자처한다면 모두들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그 사람이 관계 내에서 유령일 경우엔 나머지 일행들은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아도 된다. 특히나 열 명의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면 더더욱.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동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되는 당일치기 여행에서, 본전을 뽑으려면 차 안에서 수다를 떠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로부터 단절된 채, 다섯 시간을 묵묵히 버텨야 하는 자리가 있으니, 바로 운전석과 조수석이다. 운전석엔 선생님이 계시고 열 명 중 단 한 친구만이 조수석에 앉아야 하는 상황. 다행히도 우리에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리에 딱 어울리는 친구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유령 그 자체였다. 여행 때도 그에게 말을 거는 친구는 없었으며 그는 누가 말을 걸기 전까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여행 중간엔 존재마저 잊어버렸다. 정말이지 조수석은, 그 친구를 위한 자리인 것이다. 근데 무엇보다 무섭고 의미심장한 사실은 아무도 이러한 정황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치 챘다 해도, 내가 그랬듯이 함구한 채 여행을 즐겼을 것이다. 평생토록 기억될 학창시절의 추억거리, 인정하기 싫지만 이는 침묵과 외면, 그리고 동의라는 이름의 순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봉고차에 탑승하기 전까지 우리는 단 한 번도 협상한 적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그에게 조수석에 앉으라 말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곳에 앉아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도 없었다. 관계라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마치 부품처럼 움직였다.

 

부품 하나가 없거나, 오작동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만약 유령 역할을 해야 하는 부품 대신에 활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조수석에 ‘보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모두가 제 뜻대로 움직인 여행과 한 명이라도 불만을 안고 시작한 여행은 단순히 ‘한 명’의 차이가 아니다. 조수석으로 보내진 이, 시스템에서 소외를 겪게 된 이에게 이번 여행의 기억은 삶의 오작동으로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열 명 모두의 오작동으로 번져나간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우린 봉고차에 오른다. 아마 가장 먼저 뒷자리에 탑승하는 사람은 앞서 조수석에 앉았던 친구일 것이다. 또다시 벌칙으로써 누군가를 조수석에 보내야 하는 상황. 평생 자신을 ‘망치’라고 생각해온 이에게 ‘못’이 되라는 건, 크나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벌칙을 피함과 벌칙을 당함으로써 각자에게 기억될 것이다.

 

차라리 이처럼 부품 하나가 없는 경우라면 더 낫다. 유령 역할을 하던 부품 하나가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협상 없이 자유롭게 봉고차에 오른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유령 친구가 자기 자리인 조수석을 비우고 뒷자리에 앉아 있다. 외면했던, 눈치 채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눈앞에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가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갔더라면 묻지 않았을 자국이, 모두의 옷자락에 튀어버렸다. 유령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새롭게 호명되길 원할 때, 우린 각자가 수행해온 부품의 역할을 잃게 된다. 닫았던 입과 눈을 열고, 유령의 존재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권은 속물이 되거나, 괴물이 되는 것이다.

 

김유수(안성 공도, 양업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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