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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육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①
헬조선의 아이들, 그리고 가르치는 자의 치욕
이영미   |   2015-09-08

 

[편집자 주] 우리나라 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고 자살률은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개성과 가치관이 획일화된 채 쏟아붓는 10대들의 시간에는 배움이나 성찰이 아닌 견뎌내야 하는 고역스런 훈련이 있을 뿐이다. 본지는 이러한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모색해보기 위해 대한민국을 ‘지옥’이라 얘기하는 청소년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 출발점을 찾고자 한다.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행정가 등의 필진을 섭외해 생생한 교육현장을 전달할 예정으로, 필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가명으로 게재됨을 밝힌다.

 

지난 2일, 한 일반 고등학교의 수업은 마흔 명 중 대여섯 명이 엎어져 자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교사는 아이들을 깨울 용기가 없었고 아이들도 굳이 일어나서 수업을 들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수업한 지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인 임시교사는 당황했다. 아이들에게 배우는 일의 기쁨을 선사하겠다던 옹골찬 의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교양 있게 존댓말을 써가며, 또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수업을 하겠다던 열의도 접어야 했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풋내기 교사의 순진한 상상이었다. 한 아이가 다른 수업시간에는 자는 아이가 더 많다는 말로 앞에 선 자의 당황스러움을 위로해주었다.

 

이제 열일곱, 한창 신나고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저 밀집식 사육장에 가둬진 병든 닭들 같았다. 배움에 대한 의지도, 의욕도 없었으며, 적극성과 활기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교실을 가득 메운 것은 그저 방관하는 시선과 알 수 없는 적대의 눈초리, 시들어가는 순수였다. 교사는 일주일 만에 목이 쉬었다.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대한민국에서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은 그저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핀란드나 캐나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한국교육제도에 대해 말하면 기함을 토한다. 그곳에선 몰래 다른 과목 교과서를 펴놓고 과제를 하는 일도 없고 대놓고 엎어져 자는 학생도, 그것을 그냥 두고 보는 교사도 없다. 또 정부와 언론을 이토록 불신하는 청소년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을, 이 사회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헬조선,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이르는 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의 고통을 절규하고 있었다.

 

교사는 생각했다. 대한민국 제도교육의 현실이 계속 이와 같다면 이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는 걸. 지금의 교육은 자발성도, 열정도 없는 사람, 협동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사람, 인간관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탈정치적이고 냉소적인, 그리하여 사람이기보다는 기형에 가까운 군집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생들은 어른들의 근로시간보다도 많은 시간 학습노동을 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공부에 매여야 하고, 공부에 흥미가 있는 아이나 흥미가 없는 아이나 똑같은 시험을 보아야 한다. 아이들의 개성은 무시당하고 유권자가 아닌 아이들의 의견은 호소할 곳이 없다. 그 잘나가는 영화 ‘암살’을 본 아이도 반에 두세 명이 되지 않았다. 이 사회는 가축을 키우듯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어놓고 책상에 붙들어 매놓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행복할 리 있을까? 우리나라의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OECD 34개국 중 어린이와 청소년 행복지수도 꼴찌를 달린다. 그것이 이 대한민국이 가진 성적표다.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부모들뿐이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질문해 반향을 일으켰던 공익광고가 있었다. 아이들의 학습노동 관리자로 전락한 부모들에 대한 풍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학부모도 ‘가혹할 학’자를 쓰는 학부모란다. 아이들을 무턱대고 공부로 몰아간다고, 성공을 위해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 그 사나움과 가혹함을 빗댄 말이다.

 

과도한 경쟁만이 전부가 된 대한민국의 교육을 이대로 두고서는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의 성공이라는 그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고 이 출구 없는 경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마당에 누가 교육감 선거 폐지를 외치는가? 한국교육제도에 대한 공동의 논의를 가능하게 하고 교육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가 그나마 눈꼽만큼이라도 반영되게 하는 것이 교육감 직선제다. 겨우 하나 있는 숟가락까지 뺏고자 하는가? 그 마음들이 참으로 무섭다.

 

이영미(가명· 신소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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