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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기적의 공간, 개성공단!
분단 70주년 기념 특집서평 《개성공단 사람들》
황윤희 기자   |   2015-08-12



▲  《개성공단 사람들》, 내일을 여는 책, 1만5천원.

한 사람이 있다. 어느 날 갈등이 일어 쪼개지더니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었다. 쪼개진 오른쪽과 왼쪽은 그리하여 서로를 직시하지 않고 반쪽을 비난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나는 오른쪽이고 너는 왼쪽으로 다르니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고, 영영 남으로 사는 게 좋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괜찮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왜? 쪼개진 채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일을 할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전한 몸을 가진 타인은 두 발로 척척 들판을 걸어 나가는 중인데, 쪼개진 두 쪽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뒤뚱거리며 가는 중이다. 뒤처져 짐승의 먹이가 되기 좋고 굶어죽기에 딱 좋다. 이 쓸쓸하고도 서글픈 풍경. 이것이 바로 오늘날 분단된 우리들의 모습, 한반도의 상황이다.

우리가 북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를 생각한다. 실상 남한사회에 범람하는 북을 비난하는 글과 말들은 제대로 된 사실과 이해에 바탕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덮어놓고 욕하고 외면하는 태도로 우리는 7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온 것이다. 누가 이것이 올바르다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정은 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인지, 《개성공단 사람들》에는 북한주민이 반 농담으로 ‘남한사람들 머리에 뿔 달린 줄 알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 이리 거울 같을까? 우리도 그랬던 적이 있다. 어릴 적만 해도 북의 사람들이 늑대로 나오는 반공영화가 흥행하지 않았던가? 남과 북은 그렇게 서로를 뿔 달린 괴물로 오해하며 살았다. 웃기고도 슬프다.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덮어놓고 욕한다고 해서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황과 기형의 역사가 청산되는 것도 아니다. 분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를 낳으며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멍에를 씌우고 있다. 그러니 외면과 비난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강제적인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북을 평화와 통일의 대상으로서 우선 ‘존중’하고, 알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행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의 일인 것이다.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면, 생때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또 그 엄청난 세금을 국방비로 쏟아 붓는 허망한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면, 게다가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다시금 식민지나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당장 북을 마주하고 앉아야 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사람들》(내일을 여는 책, 1만5천원)의 추천사를 쓴 북한 이탈주민은 ‘한국사회에서 북한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글이나 책을 본 적이 없다. 제대로가 아니라 목불인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썼다. 북한사회에서 상당한 고위층에 있었다는 그는 그러면서 이 책을 추천했다. 그처럼 《개성공단 사람들》은 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놓았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개성공단에서 근무했던, 또 지금도 근무하는 남한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공단 사람들》은 친북도, 반북도 아닌 남한사람이 본 북을 담은 책이다. 그리하여 가치중립적이다. 판단하기에 앞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책인 것이다. 한번쯤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개성공단, 퍼주는 게 아니라 ‘퍼오는 곳’

개성공단이 출발한 지 10년이다. 많은 이들이 개성공단이 다 멈춰버린 줄 알지만 10년 세월에 이명박정부 하인 2008년의 6개월을 제외하고는 멈춰선 적이 없다. 개성공단이 ‘위험하다’ ‘퍼주기다’ 떠들어도 개성공단은 돌아갔고,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개성공단은 멈추지 않았다. 남한의 기업은 한 곳도 개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인터뷰를 진행한 남한의 기업인, 주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성공단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 중소기업에게 개성공단만한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매년 1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투자해 최소 15~3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져오는 곳이다. 인건비, 접근성, 기술성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것이 남측 기업인들의 평가다.

개성공단에 일하는 근로자 수는 10년 동안 계속 늘어 현재 5만3천여명이 일하고 있다. 개성에 있는 사람들 거의 다 공단에 들어와 있는 셈이란다. 지금은 오히려 남한 기업이 요구하는 만큼의 근로자를 공급하지 못해 문제라고 했다. 원래 개성공단은 전체 2천만평에, 50만명 규모의 거대도시로 조성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개발이 멈춰선 상태로, 100만평 대지에 124개 기업이 들어서 있다.

책은 북에게 개성공단은 ‘단순한 남북경제협력의 장소가 아니라’고 전한다. 북은 개성공단을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적 최고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 공단 조성 당시 북의 근로자 임금수준을 월 200달러 수준으로 정했다가 그것을 50달러로 최종 확정한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개성공단에 들어온 남측 기업이 초기에 성공해 돈을 많이 벌어야 공단이 확대되고, 그런 식으로 남북경협공단이 생겨나야 실질적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구조화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태도는 북측 근로자들에게서도 확인되는 대목이다. 공단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남측기업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큰 뜻을 받들고 어려운 남측 중소기업을 도우러왔지,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맡긴 사회적 소임을 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생활비를 국가가 책임져주는’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참으로 다르다. 개성공단이 북측 지도부의 돈줄이라는 생각, 근로자의 임금이 다른 쪽으로 유용된다는 남한사회의 편견과는 참으로 먼 현실이다.

책을 읽으면 개성공단이 북에 퍼주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퍼오는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에겐 단순히 경협공간으로 여겨지는 개성공단이 북에서는 통일시대를 향한 민족사적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오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잘 살필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남한 주재원이든, 북측 근로자든 개성공단에 실제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개성공단을 치안이 불안한 동남아보다 안전한 곳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으로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사람들 99.9%가 ‘북맹’

예의바르고 순수하다, 순박하고 선하고 진실하다, 거짓말을 하면 눈에 그대로 드러난다, 때 묻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하다, 말발이 세다, 개인적 경쟁심이 별로 없으나 집단적 경쟁심은 남다르다. 이상은 북측 사람들에 대한 남한주재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또 북측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 가지쯤 있는데, 그게 입이 무거운가, 정이 많은가, 강직하고 정의감이 강한가, 란다. 북은 그런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또 돈 중심적 사고를 매우 천박하게 여긴다고 했다. 사람의 노동생산성을 분발시키는 것은 정치·도덕적 자극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물질적 자극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북측 사람들은 전부, 모두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열렬한 신심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역사적 피해의식이 남한보다 깊고 자신들의 힘겨움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통일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책은 전하고 있다.

고용-피고용의 개념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명령과 복종, 자본 우위의 우리식 기업문화는 기대하기 어렵단다. 월급 받는 사람과 월급 주는 사람이 동등한 지위인 것이다. 남측주재원들은 북측 사람들을 보면서 폭력적이고 봉건적인 요소가 남아 있는 우리의 기업문화를 돌아보게 됐다고 증언한다. 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경제민주화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개성공단에서는 북의 근로자를 ‘존중’해주고 그들의 ‘자율성을 담보’해주면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이 성공한다고 했다. 한 기업인은 ‘일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그들은 어떻게든 해낸다고, 그런 걸 보면서 보람과 가능성을 느끼고 개성공단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구나, 어디나 차이를 알아야 공존을 꾀할 수 있다. 《개성공단 사람들》을 보면 북이 우리와 어떻게, 무엇이 다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름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책에서 남한주재원들은 남한사람들 99.9%가 ‘북맹’에 다름 아니라고 했다.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책에는 이런 얘기 말고도 북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있는 대목이 많다. 놀랍게도 북은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표현수위가 높단다. 음담패설을 잘한다는 것인데 상상이 되질 않는다. 또 1인 1악기를 연주한다는 것, 전기와 물은 국가가 공급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낄 줄 모른다는 것, 쌍꺼풀 수술을 국가가 무료로 해준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남존여비 문화가 남아 남자보다 여자가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다. 통일되면 아마도 북쪽의 남자와 남쪽의 여자가 결혼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강고한 체제, 무너지지 않는 사회주의 대가정

‘북한 사회와 체제는 강고했고 인민들의 국가권력에 대한 충성도는 높았다.’ ‘북한주민의 고도의 집단주의와 충성심은 온전히 자발적인 것들이다.’ ‘우리 제도를 북한 체제에 이식하고 그것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허황되다.’ ‘저성장 구조에 빠진 우리 경제의 물리적, 구조적 돌파구가 남북경협이라고 확신한다.’ 이상은 책에 나오는 말들이다. 김진향 교수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가능하지도, 가능할 수도, 가능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오직 통일만이 평화이며, 나아가 통일에는 한 푼의 돈도 들지 않는다고 전한다. 오히려 엄청난 경제적 상호번영이 기다릴 뿐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옷의 70%가, 우리가 입는 옷의 30%가 개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이미 북측 근로자들이 만든 옷들을 걸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됐다가 다시 재개되었을 때, 많은 기업인들이 북측 근로자를 다시 만나 함께 얼싸안고 울었다고 전했다. 실제란 그런 것이다. 만나 어울리면 우리는 얼싸안고 울 만한 서로의 반쪽인 것이다. 분단이 70년이다. 서글픈 역사가 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일은 사어가 된 얘기가 아니라 새로이 부상하는 블루오션이다. 우리 사회의 기형과 장애는 오직 통일로만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우리의 반쪽이 궁금하지 않은가? 《개성공단 사람들》을 읽으라. 거기 우리와 참 많이 닮은 그 누군가가 있다.

황윤희 기자 9486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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