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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제는 9시 등교가 아니라 과도한 학습시간
이주현   |   2014-10-21

▲ 필자 이주현.    © 안성신문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집 고등학생을 만났다. 출근하는 8시 30분 정도에 만난 학생, 좀 의아했다. “지금 등교하는 거니? 늦은 거 아냐?” 말을 건네면서 아차 싶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한 9시 등교가 뒤늦게 생각났다. 학생 역시 “9시까지 등교하면 돼요”라고 답을 했고, 이어지는 내 질문은 “등교시간이 늦춰지니 좋지?”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약간 빗나갔다. 학생의 대답은 “잠 더 자고 아침도 먹고 좋은데 등교시간이 늦춰진 만큼 늦게 끝나서 별로예요”였다.
 
어른인 내 입장에서 당연하게 여기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등교시간이 늦춰지면 아이들이 편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학생의 경험어린 대답을 통해 깨졌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에게는 기대만큼의 체감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1일부터 경기도 초·중·고교에서 ‘9시 등교’를 시작했다. 이는 “부모님은 9시 출근하면서 왜 우리는 9시 등교가 아닌가?” “잠 좀 자고, 가족과 머리 맞대고 여유롭게 밥을 먹고 싶다”는 여중생의 요구를 이재정 교육감이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시행되었다.
 
모든 정책이 그렇지만 이번에도 일부 교육현장과 학부모의 반대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반대 이유는 많았지만 대략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8시 전에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아이가 혼자 등교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 둘째, 학습량의 감소로 성적이 떨어지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서울로 전학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학부모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눌러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반대의 주장에서 아이들을 대변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를 비롯하여 학부모, 학교, 교사의 입장에서 9시 등교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도교육청은 이런 우려에 대해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자.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도 개방하고 별도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겠다”고 대응했다. 9시 등교를 기준으로 하고 불가피하게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은 별도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아침이 여유로운 것은 좋은데 저녁에 한 시간 늦게 학교가 끝나 학원 가는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이 말은 신문사 인터뷰에서 한 학생이 한 말이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학생과 같은 대답이다. 9시 등교를 추진하는 도교육청도 이에 따른 아이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9시 등교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치인 손학규가 제시했던 ‘저녁 있는 삶’이 우리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조금은 넉넉한 수면과 가족과 대화할 수 있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아침 있는 삶’이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계기가 되면 충분하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자고 공부시간은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1주일 평균 공부시간은 33시간인 반면 우리나라는 16시간이나 많은 49시간으로 1위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2013년 고등학생 평균 수면시간이 5시간 27분 집계되었다. 일본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20분, 미국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12분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약 1~2시간을 적게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에서 발표한 청소년 권장 수면시간은 하루 8~9시간이다. 학생들의 공부시간이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핀란드는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우리보다 높게 평가되었다. 굳이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부족한 수면과 과도한 학습시간으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9시 등교가 전부가 아니다. 수업시수는 물론 학원, 과외로 이어지는 공부시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아이들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없다. 학벌사회와 경쟁교육을 부추기는 현재의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9시 등교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9시 등교가 변화의 시초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교육의 충분조건은 학생이다. 우리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9시 등교를 바라보자.
 
이주현(소통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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